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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다 메시아 현재 계룡산에 400명있다

밝은그림자 2023. 3. 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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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메시아 악마의탈

하지만 지금 현재도  자칭 메시아가 400명 넘게  있다  

계속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이비종교에 대해서 파헤치다 보면 그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찿아봐야할 것이다.

현재 계룡산에 자칭 메시아를 외치는 사람들이 400명있다.

 

계룡산

계룡산은 대한민국 중부 공주시 근처에 위치한 산입니다. 최고봉 해발 845m로 아름다운 경치와 문화적 중요성으로 유명합니다.

계룡산은 수세기 동안 하이킹과 관광으로 인기 있는 곳이었습니다. 산에는 9세기 신라 시대에 지어진 유명한 동학사를 포함하여 많은 사찰이 있습니다. 사원은 아름다운 건축물과 주변 산과 계곡의 멋진 전망을 자랑합니다.

계룡산은 문화적 의미 외에도 중요한 생태자원이다. 산에는 1,000종이 넘는 식물과 많은 희귀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포함하여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계룡산은 한국의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신흥종교의 탄생

이들이 세상에 나오면 또 다른 신흥종교가 생기고 가족들을 분열시키고 인생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1980년대만 해도 계룡산은 무당들의 천국이었다. 전국에서 신기(神氣) 있다는 무당은 모두 계룡산으로 몰려왔고 이름 있는 무당들은 계룡산에서 펼친 전력을 훈장 삼아 유명세를 떨치곤 했다.

 

계룡산은 지세가 크고 웅장하며, 골과 봉우리가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전국에서도 이름난 명당으로 손꼽힌다. 과거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첫 도읍을 이곳 계룡산으로 정하려 한 일이며, 조선말 정감록의 예언에 담긴 새로운 세상의 시초도 이곳 계룡산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면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계룡산에는 특별한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속인 제사

그러나 그런 특별함 때문에 계룡산은 갖은 위험과 훼손을 감당해야 했다. 산불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었고, 제를 지내기 위해 파놓은 기도터로 인해 산이 병들어 갔다. 제를 지내고 난 후 남겨진 음식물은 악취를 동반한 쓰레기로 변했다. 북과 꽹과리는 시끄러운 소음이 되어 온 산에 울려 퍼졌다. 사람에게는 물론 야생동물들에게도 위해가 되었다.

 

1987년 공단이 창립되고 계룡산국립공원사무소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당시 사무소의 제1 목표는 무당 퇴치. 무속행위로 병들어가는 계룡산을 지키기 위해 사무소는 일대 전쟁을 준비했다. 이름하여 무당과의 전쟁! 1980년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계룡산에서 펼쳐진 무당들과의 한판승부, 그 역사의 현장을 소개한다.

여자교주도 나오고

왜 계룡산인가?

계룡산에는 소위 기를 잘 받는다는 명당이 몇 군데 있다. 삼불봉 기도터, 신원사 연애골, 숫용추. 세 곳은 전국에서도 이름난 기도자리이다. 기도터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무당과 의뢰인으로 항상 북적였다. 돼지머리를 비롯해 과일, 떡 등 제사음식이 차려지는데, 돼지머리는 의뢰인들의 정성과 재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였다. 단순히 돼지머리를 진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통돼지를 그대로 올리기도 했다. 한바탕 굿판이 벌어지면 북, 꽹과리, 장구 같은 타악기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능선과 계곡을 따라 온산에 퍼졌다. 

 

현실을 부정하는 정신병자도 메시아가 될수있다

단속

통상 단속반은 2인 1조씩 구성되었다. 그때만 해도 인력이 부족해 3조 이상 꾸린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인상이 험악하고 힘 꽤나 쓴다는 직원으로 꾸렸다. 단속과정은 엄청난 위압감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또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완력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는 외모에서부터 한 수 먹고 들어가야 했다. 한번 단속을 나가면 줄잡아 30명을 단속하곤 했다. 단속과정이 쉽지 않지만 오랜 기간 숙련된 방법으로 능숙하게 진행했다. 단속반이 기도터를 덮치면 기도꾼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의 행동을 했다. 저항파, 줄행랑파, 그리고 눈물 파였다. 저항 파는 말 그대로 거센 저항으로 일관하는 부류이다. 전국에서 명당을 찾아 이곳까지 온 기도꾼들은 인상착의부터 범상치 않았다.

자신에게 돈과 몸을 다주면 천국갈수있다고한다

거침없는 무속인들

하얀 백발을 휘날리며 연신 허공을 향해 칼춤을 추는가 하면 거북스러울 만큼 화려한 화장과 온갖 장신구로 치장한 옷을 입고 기이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들은 험상궂은 인상과 기이한 행동으로 단속을 방해하고 연신 으름장을 놓았다. 대를 끊어 놓겠다, 집안에 액운이 덮치게 하겠다, 막말과 폭언으로 저주를 내렸다. 듣도 보도 못한 욕을 일삼기도 하고 굿을 하기 위해 준비했던 칼과 작두로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제 아무리 국립공원을 지키기 위해 나선 단속반 직원이라 해도 칼 앞에서는 움츠려 들기 마련이었다. 말로 잘 구슬리기도 하고 때로는 완력으로 제압하기도 했다. 강하게 저항하는 무당들은 단속을 어렵게 했다. 동행한 이들에게 도주의 기회를 주기도 하고 주변을 떠들썩하게 해 인근의 기도꾼들에게 단속반이 왔음을 알리기도 했다. 

 

또 다른 유형은 줄행랑파. 단속반이 뜨면 그 많던 기도꾼과 의뢰인들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바위 밑, 나무 숲 사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은신처가 되었다. 실제로 기도꾼들은 짧게는 며칠부터 길게는 한 달을 기거하며 기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은신처가 필요한데 이 역시 공원관리 측면에서는 골칫거리였다. 움막을 짓거나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기거했다. 사람이 생활한 자리는 훼손되었고 쓰레기와 폐기물을 고스란히 남겼다.

무언가를 맹복적으로 믿는 사람들 안타까운일이다 영생을 원한다

마지막 유형은 눈물 파다. 기도터를 찾은 의뢰인들은 저마다 딱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건강상의 문제, 사람과의 문제, 사업상의 문제, 가족 간의 불화 등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딱한 사정을 모두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세상의 끝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는 곳이 바로 계룡산이었다. 자신의 사정을 눈물로 쏟아내는 이들을 단속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간적인 연민과 동정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공원관리자로서의 책무를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국립공원의 자연을 보전하고 산불의 위험에서 지키는 일은 그 어떤 명분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종말을 예견하며 사기치는 무속인도 있다

무당과전쟁

무당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5∼6년이 지나고부터 기도꾼들의 출입이 현격히 줄었다. 지속적인 단속과 함께 공원 입구에서 펼친 계도 활동이 빛을 발한 것이었다. 전국의 무당들 사이에서 계룡산은 이미 국립공원 직원들의 철저한 감시망에 더 이상 발붙일 틈이 없다는 소문이 났다. 과태료 50만 원을 물을 각오를 하고 찾아와야 하는 곳이 된 것이다.

 

결론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이르면 기도터는 더 이상 기도꾼들의 명당이 아닌 탐방객들의 명소가 되었다. 시끄러운 굿소리와 악취로 신음하던 기도터는 탐방객들의 쉼터가 되었고 야생동물들에게는 포근한 휴식처가 되었다. 계룡산의 계곡과 봉우리마다, 그리고 기암과 골짜기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서려 있다. 그중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계룡산에 얽힌 무속의 역사일 것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롯이 계룡산 곳곳에 새겨져 있고 아픈 사연과 슬픈 역사는 추억이 되어 계룡산에 남아 있다.아직도 남아있는 자칭 메시아들을 철저히 단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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